[2020년 결산] 1.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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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결산] 1.남북관계
  •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0.12.04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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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권연구소

남북관계에서 2020년은 정말 답답한 한 해였다.

​2019년을 지나며 우리는 미국만 바라보고 있다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올해 1월 7일 신년사와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미대화를 앞세웠던 것이 사실”이라며 “북미 대화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또 남북 간에도 할 수 있는 최대한 협력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마치, 이제는 자주적으로 남북관계 발전에 나서겠다는 투였지만, 정작 행동으로 옮기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남북 사이에 아무 일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나빠졌다. 남북관계가 나빠지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1. 아무것도 하지 않은 대가

▲ 6월 16일, 개성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됐다
▲ 6월 16일, 개성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됐다

6월 16일,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됐다.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되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연락사무소가 폭파된 이유는 대북전단 살포 때문이었다. 남북은 판문점선언 2조 1항에 대북전단 살포를 중지하자고 대놓고 적어놓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판문점선언을 합의한 지 2년이 넘도록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북한은 연락사무소를 폭파하기 전에 대북전단 살포를 중지하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6월 4일 “(대북전단 살포를 계속하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남북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하여튼 단단히 각오는 해두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경고를 듣고서라도 판문점선언을 이행했으면 연락사무소는 폭파되는 걸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문재인 대통령은 6.15 공동선언 발표 20주년 기념사에서 “한반도 운명의 주인답게 남과 북이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찾고 실천해 나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판문점선언을 이행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지금껏 대북전단을 살포해서 미안하다는 반성도 없었다. 그러면서 남 얘기하듯 ‘실천해 나가기를 바란다’라고 유체이탈 화법을 썼다. 다음날, 북한은 김여정 부부장이 경고한 대로 연락사무소를 폭파해버렸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앞으로 대북전단 살포를 막겠다며 조치를 할 듯이 말했다. 그래서 처음엔 대북전단 살포 단체를 해산시키기 위해 법인 허가를 취소하려 하기도 했다. 그런데 법원이 정부 조치를 중단하라고 판결하는 바람에 무력화됐다.

​민주당은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은 6개월이 지나 최근에야 가까스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나마 국힘당의 반대를 뿌리치고 통과시켜서 다행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는 식으로 언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7월, 외교안보라인 교체를 선언하며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박지원 국정원장을 임명했다. 이때 국민은 ‘문재인 정부가 이제 남북관계에서 뭔가를 하려나 보다’라며 내심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임명 후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남북관계 발전에 훼방을 놓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8월 5일에는 통일부가 북한 술과 남한 설탕 물물교환에 허가를 내줄 것처럼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통일부는 물물교환을 불허해버렸다.

​통일부는 계약을 한 북한 기업이 제재 대상이라며 불허한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교역 대상인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는 유엔제재와 미국 독자 제재 목록에 있지 않다. 통일부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통일부는 왜 물물교환을 불허한 것도 모자라서 거짓말까지 한 것일까? 이런 미심쩍은 행보 때문에 통일부가 제재 때문에 물물교환에 실패한 게 아니라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방해하기 위해 제재 핑계를 댄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미국의 방해를 이겨내고 판문점선언을 이행할 방법을 찾아도 모자란 판에 할 수 있는 사업까지 방해하고 있으니, 남북관계는 악화할 수밖에 없다.

2.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은 이유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동안, 미국과 반통일 세력은 남북관계를 파탄 내려고 시도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서해 어업지도원 사건이다.

​국방부는 북한이 시신을 소각했다고 발표했다. 훗날 북한이 시신을 소각했다는 국방부 발표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국방부가 국민을 선동하기 위해 자극적인 가짜뉴스를 퍼트린 것이다.

​국방부가 입장을 발표하자 국힘당은 정부를 맹비난했다.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고 남북대결을 조장하려는 시도였다.

​이런 반통일 세력의 기도를 막아낸 건 정부여당이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부의 발표를 보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거나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다”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런 상황을 바꾼 건 북한이다. 북한은 어업지도원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전통문을 보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해역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남녘 동포들에게 실망감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사과까지 전했다.

​북한의 조치는 반통일 세력의 힘을 꺾어놓았다. 그후 국힘당은 국정감사에서 어업지도원 사건으로 정부를 맹비난했지만 별다른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자 서해 어업지도원 사건은 곧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렸다.

​반통일 세력은 남북관계를 파탄 내려고 수를 써봤지만, 북한의 진정성이 반통일세력의 권모술수를 제압했다고도 볼 수 있을 듯하다. 그후 북한은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실마리를 만들어 냈다.

​올해 10월 10일은 조선노동당이 만들어진 지 7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북한은 이날 열병식을 대대적으로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열병식에서 북한 주민을 지극히 아끼는 연설을 했다. 그러면서 한국 국민에게도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이 마음을 정히 보내며 하루빨리 이 보건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마음을 담은 따뜻한 인사를 보냈다.

​김정은 위원장의 연설은 한국 국민 사이에 빨리 남북관계를 개선하길 바라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어업지도원 사건이 일어나고 북한이 열병식을 했는데 오히려 남북관계 발전을 기대하게 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3.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풀어야 할 문제

▲파주 통일대교 앞에 집무실을 차리고 유엔사에 항의하고 있는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시장
▲파주 통일대교 앞에 집무실을 차리고 유엔사에 항의하고 있는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시장 (출처: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 페이스북)

​올 한 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먼저, 미국의 눈치를 보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5.24 제재 해제를 검토해보겠다는 밝혔다가 미국으로부터 “한국은 우리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 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내심 미국 대통령이 새로 당선되면 남북관계를 개선할 기회가 오지 않을까 기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선이 유력한 조 바이든이 남북관계를 개선하도록 승인해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버락 오바마 정권 시절 부통령이었다. 오바마 정권은 임기 8년 내내 ‘전략적 인내’라며 북한과 대화를 전혀 하지 않았다. 바이든이 적극적으로 북한과 관계개선을 하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더라도 마찬가지다. 지난 4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판문점선언을 이행하도록 내버려 둔 게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해리 해리스 주한미대사가 문재인 대통령을 종북좌파라며 색깔 공격까지 했다.

​최근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시장은 접경지역인 도라전망대에 집무실을 설치하고자 했다. 접경지역이라 우리 군에게서 허가까지 받았다. 그런데 이재강 부지사는 결국 집무실을 설치하지 못했다. 유엔사가 가로막은 것이다. 유엔사는 다른 게 아니라 바로 미국이다.

​이재강 부지사는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앞에 임시 집무실을 설치하고 유엔사, 즉 미국에 항의 중이다. 경기도 부지사가 경기도 땅에 집무실을 설치하겠다며 미국을 상대로 1인 시위를 하는 게 참 우습고도 슬프다. 여기가 대한민국인가 미국인가.

​2019년엔 정부가 북한에 타미플루를 지원하려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타미플루는 제재 위반이 아니지만, 싣고 가는 트럭을 반입하는 게 제재 위반이라고 해서 가로막혔다. 트럭을 주는 것도 아니고 오가는 것조차 제재 위반이라는 미국의 억지를 들어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런 사례만 보더라도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자주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반북의식은 남북관계를 가로막는 또 다른 장애물이다. 올 한 해 문재인 대통령은 반북의식을 드러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6.25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서 “(6.25전쟁은)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우리도 잘살아보자는 근면함으로, 국민주권과 민주주의 정신으로 다양하게 표출”되었다고 말했다. 수십 년 전 반공 웅변대회를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의 GDP는 북한의 50배가 넘고, 무역액은 북한의 400배를 넘습니다. 남북 간 체제경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습니다. 우리의 체제를 북한에 강요할 생각도 없습니다”라고도 말했다. 어차피 내가 이겼으니까 싸우지 말자고 말한 셈인데, 사이 좋은 형제남매도 싸우게 만들 수 있을 만한 표현이다.

​남과 북이 화해하고 협력하려면 누가 이겼고 누가 졌는지를 가르는 게 아니라 한민족 한겨레로서 마음을 모아야 한다. 북한이 평양에 간 문재인 대통령을 환대한 게, 자신보다 잘 살아서였겠는가?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면 문재인 정부가 가진 반북대결 의식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4. 2021년,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기회

​2021년은 문재인 정부가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마지막 해이다. 1분 1초가 아까운 때이지만 정부는 지금도 코로나19 때문에 남북관계 개선을 할 수 없는 듯이 말하며 뒷짐을 지고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코로나19 때문에 경색된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나서서 판문점선언을 이행해야 남북관계를 풀 수 있다.

​판문점선언 말고도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제정, 국가보안법 폐지, 5.24 조치 종료, 한국의 자체 대북제재 종료, 개별관광 허용, 김련희 씨와 납치되어온 북한 종업원 송환, 장기수 송환 등등 지금도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은 많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이 만들어 준 정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민족의 힘이 정세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대통령 임기를 보냈다. 그 결과 남북정상회담을 3차례나 진행하고 평양 주민 앞에서 직접 연설하고 백두산까지 방문한 첫 대통령이 되었다.

​남과 북, 온 겨레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선, 문재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남북관계에 말이 아닌 실질적인 열매를 만들어 내야 하지 않을까? 이제 단 1년이란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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