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과 손님
주인과 손님
  • 한기연 수필가
  • 승인 2020.04.0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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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공동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바람이 닿는다. 몇 달 동안 은둔형 외톨이처럼 집에 있었다. 무기력증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낮과 밤이 바뀌는 생활을 했다. 밤늦게까지 TV를 보다 이른 새벽에 겨우 잠들고, 하루에 한 끼를 먹어도 속은 더부룩하기만 했다. 하는 일이 없어도 시간은 갔다.

그러던 중 P선생님으로부터 솔밭에 파를 뽑아다 먹으라는 문자를 받았다. 반갑게 답장을 드리고 모처럼 운동도 할 겸 외출을 했다. 아파트에서 창문을 열고 바라보던 날씨와 달랐다. 화단에는 노란 산수유꽃과 활짝 핀 목련꽃이 피어 있었다. 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낯설게 다가왔다. 수십 년 동안 계절의 변화를 겪어 왔으면서도 `아! 봄이구나'할 정도로 새롭다. 가벼운 운동복 차림인데도 겉옷을 벗게 하는 화창한 날씨다. 십 여분 거리인데 오랜 시간을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걸어갔다.

소나무 아래 왼쪽편으로 서너 평 남짓의 밭이다. 겨울을 잘 이겨내고 초록빛으로 꼿꼿이 줄지어 있는 파가 보인다. 작은 채마밭을 일군 주인의 정성이 밭 이랑에 가득하다. 예쁜 실파와 살랑거리는 부추도 있다. 작년에도 창고에 물건을 꺼내러 밭에 가 보면 갖가지 채소와 들깨까지 실하게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난해 P선생님께서 자택에서 가까운 우리 밭에 먹거리를 심어도 되느냐고 하셨다. 남편은 시골에 밭을 일구는 중이었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쓸모없이 버려졌던 땅은 살가운 주인을 만나 생명력을 얻었다.

지난해 봄, 남편은 시골 논에 농막을 지었다. 시골집을 팔고 난 후 늘 허전해 했나 보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고향에 와도 머무를 곳이 없어서 그냥 가야 하는 형제들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고 싶어 했다. 남편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모습으로 퇴근 후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지라 이른 시간에 퇴근하는데 늘 지인의 사무실에 들러 술 한 잔 마시고 늦게 집에 들어왔다. 그런데 농막을 지으면서 중고로 컨테이너를 알아보고, 흙을 채우고, 지붕 씌우는 일을 손수 품을 들여 했다. 그러한 모든 일들이 내겐 관심 밖이었다. 일을 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남의 일처럼 생각되었다.

논을 개량해 이 백여 평의 밭을 만들었다. 시댁 조카가 네 살배기 아이를 데려와 아주버님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 주말농장처럼 와서 흙을 만지고 작물을 심고, 잡초를 뽑는 정성으로 각종 쌈채소는 물론 고추, 옥수수, 콩, 깨를 수확했다. 씨를 뿌리고 거두는 동안 내가 그곳을 가 본 것은 고작 대여섯 번에 불과하다. 남편이 퇴근 후 가져온 유기농 쌈채를 맛있게 먹거나, 투덜거리며 빨간 고추를 여러 번 건조기에 말려 주는 일을 했다. 산에서 내려온 고라니가 농작물이 자라기도 전에 어린잎을 먹어 버려 밤새도록 라디오를 틀어 놓고 노심초사하며 고추를 풍작으로 거뒀다. 조카는 내가 말려 준 고추로 가루를 빻아주고, 들기름도 한 병 주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컸다.

여전히 손님으로 있는 내게 시골의 농막과 밭은 무관했다. 가끔 들르면 조금씩 정돈되는 모습을 보며 남편이 쏟는 애정을 가늠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요즘 그곳을 자주 가게 되었다. 답답해도 딱히 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 찾다 보니 농막이 떠올랐다. 주말에 가족과 고기를 구워 먹으러 가기도 하고, 바람쐬러 가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그곳에 가면 불안한 마음도 사라지고 편했다. 냉이는 꽃이 핀 뒤라 캐는 시기를 놓쳤지만 어린 쑥을 뜯고, 부추를 옮겨 심었다. 흙을 만지면서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P선생님은 아침 산책길에 오가며 서너 평의 채마밭을 기름진 옥토로 일구셨다. 뿌리 끝에 보드라운 흙을 품은 연초록빛 파를 뽑는다. 주인의 정성이 몇 뿌리의 파에 오롯이 담겼다. 세상 모든 일이 주인의 눈으로 봐야 비로소 보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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