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일진그룹이 알짜 계열사를 줄줄이 매각하고 있어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허진규 회장이 자식에게 계열사 증여를 끝마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다른 속내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마저 나돈다. 일각에서는 적자를 기록하는 계열사로 인한 부담을 자식에게 떠넘기지 않으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배구조 이슈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본지는 일진그룹 계열사 매각에 대해 알아본다.

- 장남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 차남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에게 승계
- 주요 계열사 수 년째 적자 내는 것을 그냥 두고 보긴 어려웠을 거란 분석


IB업계에 따르면 일진그룹은 일진디스플레이와 머티리얼즈 매각이 진행 중이다. 일진디스플레이의 거래 대상은 허진규 회장과 그 특수관계인, 계열사가 보유 중인 지분 43.19%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허 회장은 지분 24.63%로 최대주주다. 허 회장이 가진 유일하게 주주로 남아있는 계열사이기도 하다. 차녀 허승은씨도 지분 0.82%를 직접 보유하고 있다. 이 외에 일진머티리얼즈(11.19%), 일진유니스코(3.45%), 일진반도체(3.09%) 등이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예상 거래 가격은 1000억 원 안팎이다. 이는 코스닥 상장사인 일진디스플레이의 시가총액과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 산출된 수치다. 이날 종가(2110원) 기준 시가총액은 1087억원 정도다. 거래 대상 지분의 밸류는 470억 원이다.

- 일진디스플레이와 머티리얼즈 매각이 진행

일진그룹은 또 알짜계열사인 '일진머티리얼즈'도 매각한다. 허 대표가 보유 중인 일진머티리얼즈 지분 53.3%가 대상이다. 

지난 10일 IB 업계 등에 따르면 일진머티리얼즈 매각 예비입찰에 국내 대기업인 롯데케미칼과 글로벌 투자자인 사모펀드 운용사 등 국내외 대여섯 곳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8월 본 입찰을 앞두고 예비입찰에 참여한 기업 중 롯데케미칼이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업계는 동박사업 특성상 지속적인 대규모 투자를 통해 해외 공장을 확대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허 대표가 매각을 결정했다는 관측이 많다.

잇따른 매각 소식에 업계는 일진디스플레이의 성장성이 더는 매력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2021년 말 기준 일진디스플레이 매출 비중은 LED 사파이어 기판 14%, 터치스크린패널 86%다.

일각에서는 오너 가족간 지배구조 이슈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진그룹은 최근 자산이 5조원 이상으로 평가되면서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시 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공시 대상 기업집단은 앞으로 계열사 현황에 대한 공시 의무가 생겨, 계열사 간 거래와 특수관계인 거래 등에 대해 연 4회 공시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내부거래 규제도 적용받는다.

일진그룹은 허 회장 아들인 정석·재명 형제가 30개에 달하는 계열사를 독자 운영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장남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은 지분 97%를 가진 일진파트너스를 통해 일진홀딩스를 지배하고 있고, 일진홀딩스 아래에 일진전기, 일진다이아몬드, 일진디앤코 등 계열사를 두고 있다. 모두 모회사 지분율이 과반을 차지한다. 차남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사장도 일진머티리얼즈 지분 절반 이상을 가진 최대 주주로, 일진건설, 일진유니스코 등으로 이어지는 계열사를 장악하고 있다.

아울러 각 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높은 편이다. 일진홀딩스 계열사 일진다이아몬드의 경우, 최근 3년간(2019~2021년) 별도 기준 매출액이 각각 658억원, 500억원, 616억원이었는데 이 가운데 내부거래 매출액은 각각 498억원(76%), 338억원(68%), 17억원(68%)이었다.

일진홀딩스의 100% 자회사 일진디앤코 내부거래액도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별도 기준 매출액은 79억원, 82억원, 86억원이었는데 이 가운데 내부거래액은 31억원(39%), 34억원(41%), 42억원(49%)이었다. 일진다이아몬드에 비해 매출액 규모 자체는 작지만 내부거래 비중이 매년 늘었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선 일진머티리얼즈를 매각해 일진그룹의 덩치를 줄여, 공정위의 내부거래 규제를 피해가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53%가량인 지분을 넘기면 일진그룹 자산은 5조원대에서 3조원대로 줄어 공시 의무가 사라지기 때문에 내부거래 공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공정위는 자산 5조원 이상의 기업집단에 대해서만 공시 의무를 지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1940년생인 허 회장이 이번 매각을 끝으로 은퇴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도 많다. 이미 허 회장은 장남인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이사회 의장에게 2013년 경영권 승계를 마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계열사 구조조정 차원에서 일진디스플레이 경영권을 파는 것으로 풀이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매각 등 다양한 전략적 검토 진행 중

한편 두 회사 매각이 마무리되면 일진그룹 외형은 축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시가총액은 60%, 매출은 20% 이상 현재 대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진홀딩스, 일진다이아 등 일진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약 2조3000억 원이다. 
회사도 이날 공시를 통해 “일진디스플레이 매각 추진에 대해 최대주주에게 문의한 결과 지분 매각 등 다양한 전략적 검토를 진행 중" 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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