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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에세이> 고독과 놀기
 
김지희 수필가   기사입력  2022/08/15 [18:20]
▲ 김지희 수필가     © 울산광역매일

 냉장고 문을 연다. 한참을 들여다본다. 뭘 꺼내려고 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가만있어 보자 뭘 하려고 했지" 아래위로 훑어보는 내게 열 살도 더 먹은 뱃살 두둑한 코끼리의 짜증 섞인 대답이다. `삐삐삐` 풀떼기 가득 먹은 속 보여준 게 민망한 지 들숨 날숨 냉기 뿜으며 앙칼지게 `삐삐삐삑`.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혼잣말할 때가 많아졌다. 옅은 새벽빛이 희미하게 비치기 시작하는 시간, 머리맡에서 동침하던 휴대폰이 저 먼저 파란 눈을 뜨고 빗방울 동그라미를 그리며 쇼팽의 녹턴을 연주한다. "그래 일어난다 일어나" 평범한 일상생활은 두 해 넘어 권태롭기만 하다. 전염병으로 인해 쑤시는 듯한 불안은 게으름과 결합하여 나를 더욱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언제부터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이 수북하다. 골다공증과 콜레스테롤약 각종 영양제, 아침을 대신해도 될 정도이다. 움직임이 적어 열량을 쓸 일이 없어서인지 그다지 허기짐도 없다. 돋보기와 연필을 찾아 신문을 펼쳐놓고 여기저기 밑줄을 사스락 사스락 긋는다. 날씨 정보나 오늘의 운세도 빼놓지 않고 찾아서 본다. 한동안 잉크 냄새 맡으며 기사를 소리 내 읽는다. 여행 단신을 보다가 지금 당장 떠날 것처럼 일정을 짜 맞추고 혼자서 호들갑을 떤다. "어머나 기막혀라,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아침나절 종이신문은 세상을 내다보게 하는 창이기도 하고 조증과 울증을 맥락 없이 들락거리는 혼잣말에도 덤덤하게 함께 한 나의 오래된 벗이다.

 

 얼마 전 혼자 사는 노인에게 도시락을 배달한 적이 있었다. 보살펴 줄 가족이 없는 데다 거동이 불편하여 무료급식소까지 갈 수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개 한 마리를 키우며 혼자 사는 할머니의 집은 길고 좁은 골목 끝이었다. 대문은 열려있었고 집안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한참 동안 할머니를 부르며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인기척이 있는 방의 문이 삐죽이 열려있어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할머니는 개를 품에 안고 말을 시키고 있었다. "철수야 배고프제, 쪼매마 있으라 도시락 오면 농갈라 묵자" `끼깅낑낑`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유일한 말벗인 강아지에게 묻고 답하고. 

 

 고독이란 세상에 혼자인 듯 매우 외롭고 쓸쓸함을 일컫는 말이다. 요즘 들어 우리 사회는 노인 고독사뿐 아니라 청년 고독사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들려온다. 고독사는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죽음이다. 경제적으로 결핍하고 연약한 감정을 가진 존재라는 이유로 우리가 그들을 주변으로부터 소외시키고 구석으로 내몬 것은 아니었을까. 

 

 가전제품들이 인공지능을 장착하고 말을 하기 시작한 지 한참 되었다. 사람처럼 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곧잘 사람인 척 흉내를 낸다. 밥솥이 백미 밥을 한다, 잡곡밥을 한다, 영양밥까지 할 수 있다고 뽐내며 말문을 트자마자 세탁기, 청소기 심지어 조명등까지 줄줄이 말문을 열었다. 그중에서도 휴대폰은 한마디도 지지 않고 또박또박 말대답해 대화가 된다. 그래서 내가 물어본다. "너 몇 살이니" 

 

 `먹을 만큼 먹었어요, 그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한 나이예요` 참 재밌고 기발한 대답이 아닌가. 

 

 나는 가끔 혼자만의 여행을 한다. 사람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 때나 훌쩍 떠나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참 좋다. 고독과 놀기에 안성맞춤이다. 처음 얼마간은 낯가림이 심해서 길을 묻거나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즐길 만하다. 나 홀로 여행의 길동무로 내비게이션이 제격이다. 길도 가르쳐주고 주변의 맛집이며 유명 명소도 알려준다. 직진, 우회전, 좌회전 지시에 따라 "네네" 대답하기도 하고 지인과의 전화 연결이나 플레이리스트도 부탁하는 사이다. 옆 지기만큼이나 든든하다. 나 홀로 여행의 묘미는 자발적 고독이다. 자발적 고독은 삶을 돌아보며 자문자답하는 성찰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데이비드 재럿`의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이라는 책에서 품위 있는 죽음이란 당하지 않고 맞이하는 것이라 한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인생의 끝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인정하고 품위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고독 또한 꺼려지고 피하고 싶지만,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다. 좋은사람들과 즐겁게 보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요즘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고독도 당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맞이하면 어떨까.

 

 허기진 청소기가 바쁘게 집안을 돌아다니며 먼지를 먹어대다 그새 배부른지 잠잠해졌다. `잡곡, 맛있는 취사를 시작합니다` 밥솥이 말을 건다. 내가 대답한다. "그래, 알았어" 맑았던 하늘이 후드득후드득 굵은 빗방울을 뿌린다. 어둑발이 내린다. "소나기가 오시려나". 혼잣말이 갈수록 는다. 그 옛날 울 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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