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맞이하는 113주년 3·8 세계여성의 날은 더 의미가 깊다. 지난해 코로나19 속에서 여성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밀려나고 가정의 돌봄노동을 감당하며 힘겨운 상황에 처했다. 정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여성 취업자수는 남성에 비해 1.7배나 감소했다.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일자리도 저임금에 노동환경이 열악하다. 우리 사회는 역대 최저 출산율 운운하며 걱정한다. 답은 뻔한데도 이런 현실에 눈감고 여성을 위기 속으로 밀어 넣고만 있다. 코로나19로 노동시장·산업구조 등 세계질서는 숨가쁘게 변화하고 있다. 성평등한 노동시장을 계속 외면한다면 한국 사회에는 희망이 없을지도 모른다.

 

위기 때마다 떠밀리는 여성, 정부는 성평등 철학이 있는가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죽을 맛이다. 여성에게 위기가 반복된다. 외환위기 때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에서도 여성은 우선 해고되고 위기가 지난 뒤엔 더 힘든 위치로 간다. 코로나 위기는 여성에게 더 가혹하게 다가온다.

고용유지지원금을 여성비정규직이 받았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 고용노동부에 질의하니 여성이 더 많이 실직하지만 고용유지지원금은 남성이 더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 정부 정책 자체가 여성이 더 위기인데도 고용회복에서 남성을 우선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돌봄 문제도 마찬가지다. 여성에게 지워진 돌봄은 한마디로 ‘개미지옥’이다. 여성은 계속 해내고 있지만, 이전보다 1.5배 늘었다고 해도, 아무도 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위기에 맞닥뜨릴 때마다 여성들이 먼저 밀려나고 힘들어지는 걸 다 알면서도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 학습효과가 전혀 없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개탄한다.

청년 문제는 더 심각하다. 20대 여성 자살률이 높다. 그에 대해서도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정부 정책이란 게 사회적 약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져야 하는데도 외려 왜 이들에 대한 소외와 배제는 계속되는가.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할 때 아닌가.

모든 정책이 부모와 아이라는 가족 중심에 맞춰 세팅돼 있다. 그렇게 되면 엄마는 애 키우고, 아빠는 돈 벌어와야 한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 구조를 바꿔야 여성은 돌봄노동에서, 남성은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정부의 성평등 철학이 요구된다. 성별 직종분리 문제가 심각하다. 여성이 진출할 수 있는 범위를 다양하게 열어 주고, 차별 없이 승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성평등 임금공시제는 국정과제인데 지금 어떻게 되고 있나. 채용성차별 문제는 어떤가. 전 세계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제를 강조하지만 이런 정책으로 어떻게 늘리나. 정부가 앞장서 당겨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전혀 하지 않는다. 정부의 성평등 철학이 있는지 다시 묻고 싶다.

 

여성노동자에게 더 혹독한 현실, 노조 내 여성 참여 높여야
정연실 한국노총 여성본부장

정연실 한국노총 여성본부장
정연실 한국노총 여성본부장

코로나19는 현장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여성노동자에게 더 혹독했다. 그 고통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코로나19는 그동안 우리 사회 숨어 있던 모순과 갈등을 고스란히 드러냈고, 노동현장 곳곳에서 불평등과 차별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코로나19로 학교와 돌봄기관이 문을 닫으면서 전무후무한 ‘돌봄대란’이 벌어졌다. 돌봄노동을 위해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가정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국 사회 뿌리 깊은 성 역할 규범과 사회시스템의 부재가 만난 결과 모든 짐이 여성에게 떠넘겨진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돌봄의 사회화’를 위해 국공립어린이집과 직장내 어린이집을 확충하고 보육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언제 직장을 그만두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우리 자녀 세대까지 대물림돼서는 안 된다.

한국노총 내 여성조합원 비율은 지난해 14.4%로 전년보다 1%포인트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진일보한 성과다. 하지만 현장에 산적한 여성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조 내 여성의 참여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노조 내 여성위원회 설치와 활성화가 남성적인 노조 문화를 성평등 문화로 변화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이다. 한국노총은 40만 여성노동자 조직화 목표를 실현하고 성인지적 노동조합 활동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1908년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들은 ‘작업환경 개선’ ‘여성 참정권 쟁취’ ‘10시간 노동 보장’을 외치며 참았던 투쟁의 포문을 열었다. 113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노동자들은 여전히 고용불안과 성에 따른 불합리한 차별에 고통받고 있다. 이제 3월8일은 전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이다. 한국노총은 차별과 불평등한 세상의 고리를 끊고 모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울 것이다.
 

여성노동으로 버틴 K방역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

K방역은 유례없는 신화를 만들어 냈으나 여성은 어느 때보다 불안정해졌다. 방역 최전선에는 여성노동자들이 앞장섰고, 필수노동이라 부르는 영역에는 여성들이 동원됐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는 노동을 도맡았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가난하다.

최저임금을 받고 고용불안 속에서 일하던 여성들은 더 위험하고 값싸고 불안한 일자리로 밀려나고 있다. 다수의 여성들이 일하던 영세 제조업·관광서비스·방과후학교를 비롯한 일자리는 사라지거나 잠정적인 실업을 맞았다. 뒤이어 찾은 일자리는 택배물류 창고의 야간 분류작업이나 코호트 격리된 요양시설 같은 단기간 시간제 일자리뿐이다. 우리 사회 가장 낮은 일자리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는 한파에 얼어 죽었다. 학교가 문을 닫고 공적 돌봄이 약화하면서 가정 내 돌봄 부담으로 여성들은 퇴직을 선택해야 했다. 일터에서 발생하는 성차별과 성폭력도 여성노동자를 또 다른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아내고 있다.

“코로나로 누구나 힘들다” “모두 힘드니 조금만 더 참고 이겨 내자”는 것은 이 사회가 여성을 희생시키면서 만들어 낸 착취의 논리에 불과하다. 여성의 노동으로 버틴 K방역과 안전한 사회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지금을 전환의 시기로 만들 것이다. 113년 전 선배 여성들이 했던 여성의 권리를 찾는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

우리는 요구한다. 여성에게 전가된 독박 돌봄을 중단하라. 공적 돌봄을 확대하라. 여성만을 비정규 노동자로 사용하던 일자리 고용관행을 중단하라. 코로나19 전담병원의 인력 대책을 마련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 청년여성에게 안전한 일자리를 보장하라.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취업이 거부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라.

지금의 재난은 우리가 속한 일터와 인종·국경을 넘어선 모든 여성노동자의 문제다. 여성노동자들의 연대로 세계여성의 날 정신을 계승하겠다.

 

6411 여성 투명노동자를 응원합니다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곧 113회 세계여성의 날이다. 이날을 기념하는 모든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노회찬재단은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각계각층의 여성들에게 장미꽃을 보내고, 한국 사회의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던 고 노회찬 의원의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특히 자신의 목소리를 집단으로 내기 어려운 6411 여성 투명노동자를 응원한다. 노회찬의 장미꽃 나눔 정신으로 우리 사회가 여성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여성노동자의 권리를 개선하기를 기대한다.

노회찬재단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들의 말과 글로 세상과 소통하는 ‘6411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정치인과 전문가의 진단과 대안이 난무하지만, 당사자의 고민과 요구가 배제되곤 한다. 여성노동자들이 정당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혁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을 사회개혁의 당사자와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귀도 떠야 들린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호명하고, 경청하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그분들은 투명인간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필수 존재로 존중받을 수 있다.

기존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더해 코로나19는 청소·돌봄·보건 관련 여성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113년 전 미국 뉴욕 루트거스 광장에서 시위하며 외쳤던 “우리에게 빵을 달라, 장미도 달라!”는 외침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6411 여성 투명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정치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개혁이 시급하다.

노회찬재단은 매년 3월8일을 성평등 문화를 특별히 나누는 날이 되도록 앞장서 노력하고, 노회찬 의원이 염원했던 ‘성평등 대한민국’을 위해 노력하겠다. 우리 모두 노회찬 의원의 실천을 함께 이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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