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갑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IT 갑질신고센터, 한 달간 제보받아

폭언·모욕, 실적압박, 기타 총 21건

“사정이 뭐든 성과물로만 평가해”

“정부, 갑질 예방 매뉴얼 추가해야”

[천지일보=손지아 기자] #1. IT회사에서 다른 IT회사로 전직했습니다. 업무에 투입되자마자 직장 내 괴롭힘이 시작됐습니다. 상사가 저에게 “니가 아는 게 뭐야? 시X 니 뭐 할 줄 아는 거 없냐? X 같네. X발, 대답을 하라고” 등의 폭언을 계속해서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직원들도 저를 투명인간 취급했습니다. 저는 열심히 하다 보면 인정해주지 않을까 생각하며 버텼고 시키는 일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폭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장님께 면담을 요청했더니 되레 저보고 이해하라며 부서장을 두둔했습니다. 상사와 업무를 분리해주지도 않았습니다.

#2. 직장 내 괴롭힘이 너무 심합니다. 말 안 들으면 승진도 어렵고 고과도 안 좋을 거라며 협박을 일삼습니다. 사업 기간이 2년인 프로젝트를 3개월 내 종료하라 강요하고 기간 안에 하지 못했다고 저성과자로 평가했습니다. 일을 제대로 못 한다고 부서 내에 소문을 내고 다닙니다. 사소한 잘못에도 “회사를 때려치워”라며 윽박지르고 “화장실 갈 때도 보고하고 가라”고 합니다. 스트레스로 병원 치료를 받고 병가를 냈는데 병가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3. 부서장에게 지속적으로 심리적·신체적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업무강도가 너무 높고 잦은 야근과 성과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개인의 삶을 희생하고 밤낮없이 일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울증, 신경쇠약 등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각하고 이명까지 나타나 병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업무량 조정을 요청하자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로 지난 8월 11일부터 이달 10일까지 한 달간 제보된 IT기업 내 이뤄진 직장갑질 실제 사례 중 일부를 나열한 것이다. 직장갑질119는 ‘IT갑질신고센터’를 운영해 제보를 받았으며 이 기간 접수된 제보 사례는 총 21건이었다. 이 중 폭언·모욕이 9건으로 가장 많았고 실적압박 7건, 업무배제 등 기타가 5건이었다. IT기업은 실적 압박, 성과 강요를 통한 괴롭힘이 다른 업종에 비해 많다. IT기업의 특성상 일정한 기간 안에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는 일이 많고 성과와 실적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직장갑질119는 22일 이 제보받은 사례들을 공개하며 오는 10월 5일부터 열리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네이버, 카카오 등 IT기업 총수들을 불러 직장 내 괴롭힘 실태와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직장갑질이 반복되는 사업장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5일 네이버, 카카오, 넥슨코리아, 넷마블, 스마일게이트홀딩스, 엔씨소프트 등 주요 IT기업 경영자들을 불러 기업 내 갑질문화 개선을 촉구했지만 괴롭힘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처리 지침’과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 개정 작업을 하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합리적 이유 없이 과도한 실적을 요구하며 업무를 압박하는 행위 ▲객관적 평가 기준 없이 평가, 인센티브, 스톡옵션을 차별적으로 지급하는 행위 ▲합리적 기준 없이 정규직화를 조건으로 경쟁을 종용하는 행위 등을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에 추가해 IT기업 갑질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조직문화 혁신과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본사와 자회사에 대해 익명 설문조사를 통해 수면 아래서 벌어진 갑질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리더들의 갑질 감수성, 인권 감수성을 조사해 조직문화를 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전 사원 교육과 예방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정부의 역할로는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뿐 아니라 반복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이뤄진 사업장도 특별근로감독을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정부는 2019년 9월 1일 근로감독관집무규정을 개정해 ‘폭언-폭행-성희롱-괴롭힘 등 근로자에 대한 부당대우로 사회적 물의 발생 사업장’과 ‘본부에서 특별감독을 시달한 경우’를 예외 없이 특별감독이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직장갑질’ 관련 특별근로감독이 진행된 곳은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업장이 대부분이었다.

김유경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 벤처 정신을 무기로 단시일 내 급성장한 주요 IT기업들은 ‘성과중심’과 ‘경쟁 지상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며 “IT기업들이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지금처럼 직장 내 갑질 문제를 방치한다면 노동자들의 고통이 심각해지는 것은 물론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직장갑질119는 2017년 11월 1일 출범했으며 9월 현재 140명의 노동전문가, 노무사, 변호사들이 무료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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