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의사 순국 89주기인 10일 이봉창의사선양회원들이 묘소에서 참배를 한후 선양회 사무실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장영환 전 충효예신문 사장, 김동영 이봉창의사선양회 회장, 김구환 전 광복회 사무총장, 박윤규 김포문화원장, 김석환 전 충효예문화운동본부 서울연합회장, 홍보대사 이은지(섹소폰가수 은지), 신동표 이사, 송병승 이사, 유족 이세웅, 차갑진 전 KBS 본부장 ⓒ천지일보 2021.10.19
이봉창 의사 순국 89주기인 10일 이봉창의사선양회원들이 묘소에서 참배를 한후 선양회 사무실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장영환 전 충효예신문 사장, 김동영 이봉창의사선양회 회장, 김구환 전 광복회 사무총장, 박윤규 김포문화원장, 김석환 전 충효예문화운동본부 서울연합회장, 홍보대사 이은지(섹소폰가수 은지), 신동표 이사, 송병승 이사, 유족 이세웅, 차갑진 전 KBS 본부장 ⓒ천지일보 2021.10.19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이봉창의사선양회(총재 이상면, 회장 김동영)가 이봉창 의사 순국 89주기인 지난 10일 묘소에서 참배하고 그의 독립정신을 되새겼다.

이날 이봉창의사선양회 김동영 회장을 비롯해 송병승 이사, 신동표 이사, 홍보대사 이은지(섹소폰가수 은지), 유족 이세웅, 김구환 전 광복회 사무총장, 차갑진 전 KBS 본부장, 김석환 전 충효예문화운동본부 서울연합회장, 장영환 전 충효예신문 사장, 박윤규 김포문화원장이 참석했다.

이봉창 의사는 1932년 1월 8일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히로히토 일왕에게 폭탄을 던졌다. 비록 의거는 실패했지만 침체된 항일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렸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특히 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이 의사는 1932년 9월 30일 도쿄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10월 10일 일본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처형당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6월 30일 김구 선생에 의해 이 의사 유해가 국내로 봉환돼 용산구 효창공원(효창원로 177-18) 삼의사 묘역에 묻혔다.

이봉창 의사 순국 89주기인 10일 이봉창의사선양회원들이 이봉창의사 묘소에서 참배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0.19
이봉창 의사 순국 89주기인 10일 이봉창의사선양회원들이 이봉창의사 묘소에서 참배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0.19

특히 이봉창 의사는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유일한 인물로, 일제에게는 최고의 대역죄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봉창 의사 일가족과 친인척들의 희생이 너무나 컸다. 가족과 친가들까지 같은 죄를 뒤집어쓰면서 숨어 살아야만 했다.

더구나 의거가 실질적인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저평가되면서 다른 의사(독립운동가)들의 기념사업보다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생가나 기념관조차 없었지만 작년 10월 21일 효창공원역 부근에 건립돼 개관됐다.

김동영 회장은 “이봉창 의사는 원효로2가에서 출생했고, 기념관이 지어진 장소는 이 의사가 이사를 오면서 생가 부근이자 성장지역이다. 용산역 공무원으로 출퇴근하면서 지냈던 곳이다. 다른 의사들은 기념관과 함께 생가가 다 복원됐는데 불행하게도 우리가 부족해 늦게나마 이같이 짓게 됐다. 바로 근처에 아파트가 재건축되면서 기념관 건립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성장현 구청장이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상면 총재는 “이 의사의 의거는 대단한 업적임에도 화력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아직까지도 다른 의사에 비해 저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 안타깝다. 이 의사의 뜻을 우리 역사에 다시 선양하고 우리 마음속에 새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봉창 의사 ⓒ천지일보DB
이봉창 의사 ⓒ천지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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