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이상한 완벽주의'에 시달리고 있는 익명입니다. 제 안에 저도 어떻게 정해진 건 지 모르겠는 '완벽함'에 대한 기준이 있는데,여기에 들어맞지 못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불안함을 느끼고, 굉장한 실패감과 무력감을 느낍니다. 중요한 결과물보다는 사소한 과정에 대해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집착이 큰 편이고, 큰 시험이 다가올 때나 남들에 비해 제가 뒤처진다고 느껴 조급함을 느낄 때 그 증상은 더 심해집니다. 이런 저의 모습이 가장 자주 드러날 때는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필기를 할 때입니다. 글씨를 예쁘게 적지 않으면, 왠지 그 노트필기 내용을 보기가 싫다는 이유로, 필기를 할 때도 고개를 반듯하게 놓인 노트에 맞춰 틀면서 한 글자 한 글자 공들여서 쓰는데, 'ㅇ'을 쓰는데 제대로 된 원이 그려지지 않고 타원이나 끝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을 때나 'ㄹ'을 쓰는데 꺾이는 부분에서 너무 각이 져서, 너무 둥글게 써졌다는 이유로 마음에 안 들어합니다. 그래서 단원명을 쓰고, 한 장 찢고, 다시 단원명을 쓰고, 한 장을 찢어서 그렇게 노트 한 권을 필기는 하지 못한 채 단원명만 반복해서 쓰다가 끝난 경우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저도 이게 굉장한 시간 낭비인 것을 알고, 중요한 것은 '글씨'가 아닌 '내용'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데.....그냥 넘어가면 고쳐야 할 걸 고치지 않았다는 생각에 불안해져서 방 안을 계속 돌아다녀야 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성적으로 판단이라는 걸 하기 전에, 제 마음에 들지 않는 글씨를 제 눈이 보면 어느샌가 이미 제 손은 노트를 뜯은 상태입니다. 이렇다 보니 정작 중요한 필기를 한 내용을 바탕으로 공부를 하는 시간보다 필기를 하는 시간이 몇십배는 더 오래 걸립니다. 문제집도 이와 같은 이유로 재구매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컨트롤을 할 수 없는 거지만, 이로 인해 돈 낭비, 시간 낭비를 하는 제가 너무 너무 싫습니다. 과연 제가 쓸데없는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이상한 완벽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벗어날 수 있다면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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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경수입니다. 우선 글쓴이께서 스스로의 고민되는 점을 게시글로서 표현하셨다는 점 그 자체에 대해서부터 격려해드리고 싶습니다. 완벽주의적인 성향인 경우 자신의 과오가 드러나는 것이 타인에게 비난받을까 걱정되는, 불편한 일이었을 텐데 이렇게 글로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장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표현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문제를 현재 겪고 계시는 것이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 발전하고, 성취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죠. 더 잘하고 싶고, 시작하면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에 사람들은 완벽함을 추구합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문화적, 국가적 맥락을 떠나서 누구나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추구하고 있는 보편적인 것입니다. 가파르게 성장한 우리나라의 경제와 함께, 현대인들은 경쟁 사회에서 앞서가야 한다는 생각과 가만히 있다가는 누군가에게 추월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마음 속 한켠에 자리잡고 있어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유독 다른 국가들보다 많은듯 합니다. 단 한번의 입시 결과가 이후 인생을 크게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는 현실이 현재까지 바뀌지 않은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주변의 기대와 간섭 등이 혼재되어 전달될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완벽주의는 강화됩니다.

완벽주의자들은 목표한 일에 열정적인 노력을 기울여 훌륭한 성과를 이끌어내려 합니다. 그러나 완벽주의는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을 추구하고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때 스스로 ‘나는 실패했다’는 자기 비난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는 목표에 미치지 못한 스스로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더욱 완벽을 추구하게 되는 악순환을 하게 되죠. 글쓴이와 같이 완벽주의자는 기본적으로 ‘반드시 도달해야 된다는 완벽한 상태가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행동하는데, 더 강화된 완벽주의 성향은 빈틈없는 하루를 보내겠다고 다짐하지만 강박적 계획이 더욱 스스로를 옥죄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노력해서 해냈을 때의 기쁨보다는 노력했음에도 실패했을 때의 절망감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두려움과 불안, 피로감을 느껴 본연의 실력조차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게 됩니다.

이러한 완벽주의는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과정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초기 발달 과정에서 안정된 애착관계(부모, 양육자, 형제 및 교우 관계 등)를 형성하지 못하는 경우, 소속감과 자존감의 손상을 받게 되는데 손상의 위협에 대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완벽주의가 발달하게 된다는 것이 주 가설입니다.

불안정한 애착이 형성된 경우 아이는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거나 나를 비난하는 사람,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이는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향후의 대인 관계에 있어서 경직되고 제한되는 것과 연관됩니다. 아이는 타인에게 본능적으로 부정적인 표현이 잦아지고 무반응 또는 무관심적 태도를 보이는 등으로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또한 불안정 애착이 형성된 아이는 자신은 결점이 있는 사람이라는 자아관을 발달시키게 되며, 손상된 자아관으로 자신에게는 가혹한 판단을 내리는 경향성을 보이고 자존감이 깨지기 쉽게 됩니다.대인관계가 취약한 아이는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위해서, 그리고 거부당하는 경험에 대해 상처받지 않기 위한 보호 전략으로 완벽주의가 발달합니다. 또한 자존감이 낮은 아이는 부정적 경험으로부터 오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를 자신과 분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완벽주의가 발달하게 됩니다.

완벽주의가 어떻게 삶의 고통을 주는가를 설명하는 핵심은 ‘완벽주의란 스트레스 사건 또는 실패에 의해 활성화되는 우리 삶의 취약적 요소’라는 것인데요. 이 완벽주의로 인한 실패 또는 고통스러운 경험(=스트레스)은 다시 완벽주의를 강화하게 되는 악순환을 일으키는데, 완벽주의가 스트레스에 주는 부정적 영향은 4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완벽주의적으로 행동하는 것 자체가 기존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을 악화시킵니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꺼리는 등,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주변에 노출하기보다는 도움없이 혼자 혼란을 겪는 등의 부적응적인 완벽주의적인 대처방법을 사용함으로 고통이 지속되거나 악화됩니다.

완벽주의자들은 과거 실패를 경험하며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데, 이와 함께 미래의 실패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스스로가 실패할 가능성이 있음을 염두에 두게 됩니다. 이는 인지적으로 미래가 부정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포함되며 감정적으로는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완벽주의자는 자신의 경험을 왜곡하는 방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긍정적인 경험일지라도 실패하거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경험으로 만들어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현재 나의 완벽주의 수준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나의 완벽주의적 행동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완벽주의자들이 하는 부적응적 행동은 다음과 같이 6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실수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는 생각

- 실수할까 두려워 질문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 결과가 안 좋을 것을 걱정하며 할 일을 미루게 된다. 계속 미루는 과정에서 주변의 비난하는 말을 듣게 되면 일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2. 과도하게 강조하는 깔끔함과 정리정돈 습관

- 집 안은 항상 깔끔하게 정리하려는 것에 과도한 시간을 쏟는다. 

- 모든 물건은 자기 자리가 있으며, 반드시 그 물건은 거기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 집 앞에 잠깐 나갈 때도 제대로 갖춰 입어야 한다.

 

3. 부모의 기대

- 부모님은 시험 성적을 강조하며 친구들보다 항상 우수해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신다.

-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꼭 후회한다는 말을 하신다.

 

4. 부모의 비판

- 부모님은 내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칠 시 ‘넌 뭘 하든 안 된다는 말로 자주 비난한다.

 

5. 높은 성취 목표을 설정하는 것

- 자신에 대한 기준이 매우 높아 엄격히 자기를 관리하려고 한다.

- 똑똑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무리한 일을 계획하거나, 한 번에 제대로 완성하기 위해 업무 처리 속도가 늦게 된다.

 

6. 행동에 대해 의심했던 일

- 어떤 행동에 집중하여 실행한 후에도 ‘잘한 거겠지?하는 의심을 되풀이한다.

- 작은 실수 하나도 하루 종일 생각나 스스로를 자책한다.

 

글쓴이 분께서 특히 고충을 겪고 계신 부분은 과도하게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 에 몰두하게 되고(실수에 대한 염려가 과한 것 + 지나친 깔끔함), 해야 되는 것을 미루는 것과 완벽하게 해야 된다는 것에 대한 집착(높은 성취 목표의 설정 +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앞서 말씀드린 완벽주의적 행동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자존감과 대인관계와 관련한 부분과 맞물려 있고, 그 부분에 대한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바꾸는 과제는 장기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행동적 적응 방법을 구체적으로 상의하는 것은 정신건강의학 관련 치료자와 함께 자존감 문제를 다루고, 또한 치료자와 대화를 나누며 대인관계에서 느끼는 고충을 꾸준히 다루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다만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면, 특히 시험이 다가옴에 따른 미루는 행동을 중점으로 조정해 볼 수 있겠습니다. 지연하고 미루는 모습은 공부가 부담이 되고 높은 성취 목표를 가지고 있어 잘해내지 못할까 두려워 하는 것인데, 공부를 유지하는 시간을 현재보다 더 세부적으로 나누는 것을 권유 드립니다. 이는 높은 성취 목표에 대해 시간적 조정을 하여 실현 가능하도록 수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시간 단위로 공부하던 것을 15분 단위 또는 숙달될 시 30분 단위로 분할하여 단위과제 목표를 설정하고 기록해 보세요. 그리고 그 과제를 실제로 달성하였는지 평가하고 다시 조정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단기적인 과제로 목표를 조정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지연하고 미루는 습관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문제가 나타났을 때 당장의 해결 방법이 찾기가 어렵다면 위의 구성요소처럼 자신의 완벽주의를 강화시켰을 만한 스트레스 사건을 일대기처럼 기록해보세요.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인데, 이는 자기 반성의 의미가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곰곰히 되짚어보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 이해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 자책하는 일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일대기에는 위 여섯가지 완벽주의 행동을 구성하는 일화로 분류 될만한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나의 완벽주의 성향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구체적인 기억들을 시간 순으로 나열하여 기록해보세요. 어린 시절의 사건들은 주로 가정에서의 상황과 관련한 기억이 많습니다. 그 기억은 긍정적인 것이었는지, 혹은 부정적인 기억이었는지에 대해서도 기록해보세요.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면 모두 기록하고 나서, 그중 나의 현재의 모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부분을 찾아 보세요. 그 인상깊은 기억은 행복한 기억이거나, 불편한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그 기억 중 내가 들은 기억나는 말들과 그 말을 듣고 났을 때의 나의 감정 또한 기록해봅니다. 그 다음은 만약 그 순간의 나에게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응원의 말을 추가로 남겨주세요. 응원의 말은 스스로가 위안이 되는 긍정적인 말이어야 합니다. 나의 과거를 돌이켜 보는 것은 내가 어떻게 이러한 완벽주의가 되었을까에 대한 지점 파악에 효과적이고, 그 상황들이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완벽주의자들은 달성하기 어려운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대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나는 내가 목표한 것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걱정합니다. 스스로 이렇게 자신을 자책하기보다는, 더 잘하려고 하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해주세요. 누구나 완벽주의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자격과 능력이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행동을 수정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합니다. 천천히 변화하는 스스로를 응원하고 격려해주신다면, 행복한 완벽주의자가 되는 길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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