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느 마을에 양치기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으로 양 떼를 몰고 가 종일 풀을 먹는 양들을 지켜보다 해가 질 무렵 다시 양 떼를 몰고 내려와 우리 안에 안전하게 가두었습니다. 매일 이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하루는 무척 심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장난을 치기로 했죠. 열심히 일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말입니다.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양들을 쫓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소년은 거짓말로 소리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소년의 다급한 외침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던 일을 팽개친 채 몽둥이와 쇠스랑 등을 들고 늑대를 쫓기 위해 헐레벌떡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언덕에 도착했을 때, 늑대는 없었죠. 소년은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하하하, 장난이었어요. 하도 심심해서 한번 해 본 거예요. 늑대는 없어요.”

  마을 사람들은 화가 났습니다. 어이가 없었죠. 마을 사람들은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타이른 뒤 언덕을 내려갔습니다. 늑대가 나타나 양 떼를 해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 소년은 또 심심해졌습니다. 엊그제 했던 거짓말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진짜예요. 제발 도와주세요!” 

  소년은 다시 한 번 거짓말로 외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번에도 소년의 구호 요청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지난번처럼 몽둥이와 쇠스랑 등을 들고 양치기 소년에게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늑대는 없었습니다. 소년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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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하, 장난이었어요. 죄송해요. 너무 심심해서 그랬어요. 오늘도 늑대는 없어요.”

마을 사람들은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그렇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연거푸 속은 게 분하기만 했죠. 마을 사람들은 소년을 엄중히 나무란 다음 허탈하게 언덕을 내려갔습니다. 소년은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사과했지만, 속으로는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양들을 돌보고 있는데, 갑작스레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한 떼였습니다. 소년은 마을을 향해 뛰어 내려가며 다급하게 소리 질렀습니다.

  “늑대예요! 늑대라고요! 늑대가 양들을 마구 쫓고 있어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소년의 숨 가쁜 외침을 듣기는 들었죠. 하지만 모두 거짓말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소년에게 두 번 속았으면 됐지 세 번씩이나 속을 수는 없다고 여겼죠. 그사이 늑대들은 양 떼를 모두 죽이고 먹어 치웠습니다. 소년은 마을 사람들을 속인 걸 깊이 후회했지만, 자신이 돌보던 양들을 모두 잃고 난 뒤였습니다.

 

‘양치기 소년’으로 잘 알진 이 우화의 원래 제목은 ‘장난 삼아 골탕 먹이기를 좋아하던 목자’입니다. 거짓말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거짓말이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다주는지를 일깨워주는 이야기입니다. 어른들은 이 우화를 들려주며 아이들에게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정작 거짓말을 많이 하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입니다. 아이들의 거짓말은 혼나지 않기 위해,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칭찬받기 위해 하는 사소한 것들이지만, 어른들의 거짓말은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좋은 것을 더 얻거나 빼앗기 위해, 자신의 치부를 덮어버리기 위해 하는 중대한 것들입니다. 아이들의 거짓말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지는 않지만, 어른들의 거짓말은 세상을 혼돈과 혼탁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거짓말은 나쁜 겁니다.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거짓말은 하면 안 됩니다. 물론 피치 못할 거짓말도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거짓말입니다. 선의의 거짓말도 있죠.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큰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거짓말도 있고요. 그러나 대부분의 거짓말은 진실을 은폐하고 자신의 유익을 취하기 위해 악의를 가지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듯 작은 거짓말에 익숙해지면 큰 거짓말도 거리낌 없이 하게 됩니다. 악의적인 거짓말이 용인되고 넘쳐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도, 정의로운 사회도 될 수 없습니다. 

 

거짓말을 하면 우리 뇌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실험심리학과 연구팀이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를 이용해 실험 참가자들이 거짓말할 때 일어나는 뇌의 변화를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실험 참가자들이 거짓말할 때 뇌의 한 영역인 편도체에서 변화가 감지됐습니다. 편도체(Amygdala)는 뇌 측두엽 안쪽에 있는 신경핵의 집합체로서 동기, 학습, 감정과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실험 참가자들이 거짓말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편도체의 활성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거짓말을 많이 하면 자신이 진실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각성효과가 떨어지므로 편도체의 활성화가 줄어드는 겁니다. 거짓말을 막는 제동장치가 기능을 상실함으로써 거짓말하는 게 점점 쉬워진다는 의미입니다.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는다는 속설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거짓말은 처음 할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죄책감을 느끼지만, 두 번 세 번 반복하다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됩니다. 나중에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본인도 헷갈립니다. 심지어 자신이 한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기도 합니다. 자기가 꾸며낸 거짓말을 사실이라고 믿는 것을 ‘공상허언증(Pseudologia Fantastica)’이라고 합니다. 사실을 왜곡해 거짓말을 하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증상입니다. 공상허언증이 나타나는 사람들은 주로 타인에게 주목받기를 좋아하며, 지나치게 높은 이상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거짓말할 때 그것이 거짓이라는 걸 인지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것과 달리, 공상허언증이 나타나는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공상허언증은 심리적인 장애이기 때문에 진단이 어렵고, 거짓말 탐지기를 활용해도 신체적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사례가 학력과 직업을 속이는 겁니다. 알려지지 않은 대학을 나왔다거나 아예 대학 문턱에도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일류대학을 나오고 해외 명문대학을 나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 다닌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겁니다. 졸업장도 위조하고, 가짜로 명함도 만들어서 가지고 다닙니다. 관련 지식을 공부해 유식한 척하면서 외모를 화려하게 치장하면 모두 속아 넘어갑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믿어주면서 깍듯하게 대우하는 걸 보면 쾌감을 느낍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정말로 일류대학이나 해외 명문대학을 나와 대기업 혹은 공공기관에 다니는 엘리트라고 믿게 됩니다. 나중에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나더라도 이를 부인합니다. 거짓으로 꾸민 자신이 진짜 자신이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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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상허언증은 정식 의학용어나 정신 질환명은 아닙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다루는 정식 질환으로는 ‘뮌하우젠증후군(Münchausen Syndrome)’이 있습니다. 허위성 장애 또는 인위성 장애라고도 합니다. 실제 앓고 있는 병이 없는데도 아프다고 거짓말을 일삼거나 자해를 해서 타인의 관심을 끌려는 증상입니다. 18세기 독일의 군인이자 관료였던 뮌하우젠 남작은 자신이 겪지 않은 모험을 거짓으로 꾸며 사람들을 속이고 관심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의 모험담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루돌프 라스페라는 작가가 그의 이야기를 엮어 『허풍선이 뮌하우젠 남작의 놀라운 모험』이라는 책을 출판했죠. 1951년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리처드 애셔가 신체적인 징후나 증상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서 자신에게 관심과 동정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정신적 질환을 소설 주인공 이름을 빗대 뮌하우젠증후군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는 불치병에 걸린 게 틀림없어. 의사들은 몰라. 나는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왜 아무도 내 병에 관심이 없는 거야. 난 환자라고. 현대의학이 발견하지 못할 뿐이지.”

  이렇게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 증상이 없는데도 병이 있는 것처럼 수없이 병원을 찾아다니고 약을 지어 먹고 온갖 민간요법을 찾아 시행하기도 합니다. 자신뿐 아니라 자녀나 주변인 역시 건강한데도 병이 있다고 하면서 병원이나 의사를 찾아가기도 하죠. 의사에게 잘 따지며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토론하려고 하면서 중독성 있는 약물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타인의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아픈 척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부풀리는 정신장애를 겪는 것입니다. 주로 어린 시절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거나 심한 박탈감을 경험한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 혹은 타인으로부터 사랑받으려는 욕구가 원인이 되는 것이죠.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만을 진실로 믿으며,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말합니다. 물론 정식 의학용어나 정신 질환명은 아닙니다. 이 또한 미국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5년에 쓴 범죄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서 생겨난 용어입니다. 반항아적 기질의 주인공 리플리는 친구이자 재벌의 아들인 그린리프를 시기해 죽인 뒤에 대담한 거짓말과 행동으로 그린리프의 인생을 가로챕니다. 리플리가 아닌 그린리프의 삶을 대신해서 살아가는 것이죠. 결국 그린리프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그의 연극은 비극으로 막을 내립니다.

 

  양치기 소년이 우화 속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현실 속에 무수한 양치기 소년들이 있습니다. 아침부터 밤중까지 온갖 보이스 피싱 문자와 전화가 수도 없이 걸려 옵니다. 노트북을 켜고 스마트폰만 열면 거짓과 사기가 만연한 뉴스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집니다. 무엇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하고 가려내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게 현명할까요?

  어둠이 빛을 가릴 수 없듯 거짓이 진실을 영원히 이길 수는 없습니다. 거짓으로 잠깐 이익을 보고 행복을 얻은 것 같을지 몰라도 결국 거짓으로 이룬 것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 느린 것 같고,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참과 진실을 추구하며 살면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될 겁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거짓말은 그 자체가 나쁠 뿐만 아니라 영혼을 악으로 오염시킨다.”라고 말했습니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가장 흔한 거짓말은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다. 타인에게 하는 거짓말은 그에 비하면 약과다.”라고 말했습니다. 거짓말은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지만, 이보다 앞서 거짓을 꾸미고, 말로 내뱉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을 꾸미는 나 자신의 정신건강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칩니다. 그리고 내 인생을 조금씩 갉아먹다가 끝내 무너뜨리고 맙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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