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우리는 동물 전쟁에서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제 숲은 우리가 주인입니다!” 
동물 연합군의 함성 소리는 천상의 찬가처럼 지상을 덮었다.
“행궁 주인이신 눈빛보석 왕자님의 인사 말씀을 듣겠습니다.” 
길대장이 봉수당 대청마루 단상에서 내려와 눈빛보석에게 올라가라고 정중한 예의를 갖추며 안내하는 자세를 보였다. 당황한 눈빛보석이 손을 저으며 사양했다.
“눈빛보석.”, “눈빛보석.”, “눈빛보석.”
궁궁이가 연호를 유도하자, 대두조가 동참했고 은바퀴와 청비둘기 한 쌍이 따라하자 수십만의 동물 연합군이 일제히 불러댔다. 눈빛보석은 하는 수 없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우선 이번 전쟁으로 희생된 친구들을 위해 슬퍼하겠습니다.” 
눈빛보석은 전쟁의 승리에 대한 축하 웃음보다 단상 아래로 눈물부터 떨구었다. 그러자 모두 숙연해지며 동료를 잃은 동물들이 여기저기서 애도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 때문에 팔달문 친구들이 위험에 처하게 되었고, 희생된 분들이 여러분과 저를 구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용기는 칼끝보다 강렬하게 빛났습니다. 앞으로도 그 용기는 녹슬지 않을 것이며 여러분의 자유와 평화를 늘 지켜 주리라 믿습니다.”
수십만이 운집해 있는데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바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팔달산 동굴 앞에서는 해적 둘이 보초를 서고 있었는데 이 광경을 물끄러미 내려다볼 뿐 관심이 없었다. 백구가 박수를 치며 무거운 분위기를 승전 축제로 바꾸려 했다.
“짝짝.”노랑가슴과 빠빠라기가 도와주었다. 그러자 팔달산에서 비둘기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바람이 한 번 불어주자, 나뭇잎들도 모두 박수치는데 가뭄에 비 퍼붓는 것처럼 소리가 즐겁게 쏟아져내렸다.
“이번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선물로 숲뿐만 아니라 이 행궁도 여러분이 주인임을 선언합니다!”
“눈빛보석 왕자님, 만세!” 
작은 동물 연합군은 너나 할 것 없이 기뻐했다. 눈빛보석이 단상에서 내려오자 축제가 시작되었다. 궁궁이가 단상으로 나와 기묘한 엉덩이짓을 하며 장기를 보이자 행궁 안팎이 웃느라 배꼽을 잡았다. 줄줄이 이어지는 장기 자랑으로 떠들고 춤추며 승전 축제는 거대한 웃음밭을 만들었다.
눈빛보석은 남문 시장에 가서 행궁으로 음식을 배달시켜 작은 동물들이 마음껏 먹고 마시게 했다. 저녁이 되어 어둠이 내려서야 길대장이 연합군을 해산시켰다.
“백구야, 고마워.” 
팔달문 대청마루로 돌아온 친구들이 한 마디씩 했다.
“헤헤, 별로.” 
백구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쑥스러워했다.
“이제 우리 식구로 받아들이자.” 
은바퀴가 제의했다.
“우리 식구 아니었어?” 
궁궁이가 능청을 떨었다.
“에헴, 그럼 백구를 우리 식구로 맞이하는데 이의 없는 것으로 하고 가족신고는 노래 한 곡 선사로 대신한다.” 
길대장이 나서며 반장 역할을 했다.
“노래 일발 장진!” 
백구는 창피한 것을 무릎 쓰고 노래할 일이 끔찍했다.
“멍멍멍, 머어헝 머머멍, 머~엉.”
“개가 노래하는 거 난생 처음 본다. 아이고 배꼽이야.” 
덩치 큰 백구의 순진한 행동은 팔달문 친구들이 대청마루를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폭소를 터뜨게 했다.

마음의 눈
“쾅쾅, 열어 주란 말이야!”
“반성하고 있어.” 
탕비실에 갇힌 스노가 안에서 소란을 피워도 시리우스는 열어 주지 않았다.
“기억상실증 고치는 법을 가르쳐 줘.”
“어디서 못된 소리나 배우고 어린 녀석이 못하는 소리가 없어.” 
시리우스는 이틀씩이나 종일 불러도 대답 않고 제멋대로 돌아다니다 나타난 스노를 교육시키는 중이었다. 스노는 스노대로 은교가 기억상실 중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지만 눈빛보석이 한 말이 생각나서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떡하지?’ 
스노는 쿵쿵거리며 좁은 공간에서 화장실 가야 할 급한 모습처럼 왔다갔다 맴돌았다.
“교수 이모, 나 쉬야가 마려.”
“거짓말 마.”
“나 여기 그냥 싼다.” 
시리우스의 표정으로 봐서는 스노가 어떤 말을 해도 안 믿고 열어 주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기다리고 있을 눈빛보석의 모습이 떠올려지자 점점 더 초조해하며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던 스노는 무슨 말하는지도 모르고 툭 내뱉었다.
“데네브 누나가 영영 기드로온 형아를 못 알아보면 어떡하지?”
“무슨 소리니?”
“응? 아냐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는 정신 차렸겠지 하고 문을 열어 주려던 시리우스의 손이 멈췄다.
“조금 전에 한 말 다시 말해 봐. 열어 줄게.”
“무슨 말, 나 아무 말도 안했어.” 
조금 전까지 정신 사납게 내보내 달라고 떼쓰던 스노는 탕비실 구석으로 가서 꼼짝 안했다. 아이들의 특별한 행동에는 금방 탄로 날 무엇이 있다는 것을 엄마들은 잘 안다. 지금 우주 경비선 안에서는 시리우스가 엄마처럼 스노를 돌봐 주고 있기 때문에 어린 유니콘의 말과 행동에서 눈치 챈 것이다.
“문 열어 줄게. 말해 봐.”
“싫어싫어. 나 안 나갈래.” 
시리우스는 심리 대화를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 그럼 데네브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거 안 고쳐 줄 거야? 이모가 의사인 거 몰라?”
“고쳐 줘.” 
아직 순수한 스노는 티없이 맑은 눈으로 울 것 같이 말했다.
“이모는 알고 있었어. 네가 정직한 스노가 되기를 바랄 뿐이야. 어서 나와. 솔직하게 말했으니까 네가 좋아하는 바이오껌 줄게.”
“이모는 어떻게 알고 있었어?”
 “나는 너에 관한 일이라면 뒤에도 눈이 달렸단다.” 
스노는 바이오껌을 받아 씹으며 진짜인가 싶어 시리우스의 뒤로 돌아가서 살피기까지 했다.
“에이, 거짓말.”
“진짜야, 이모는 보이는 눈만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의 눈도 가지고 있어. 너도 있을 걸?”
“그게 뭔데?” 
스노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왼쪽으로 돌렸다 하며 자신의 뒷머리를 알아보려고 애를 썼다. 
“고도를 조금 낮춰서 동쪽으로 이동해 봐.” 
시리우스는 스노가 꼬치꼬치 묻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말을 돌렸다. 스노가 온 방향으로 우주 경비선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스노야, 네가 먼저 내려갈래? 이모는 약을 가지고 뒤따라갈게.”
“응.”
“응이 아니라, 예 해야지.” 
스노는 들은 척도 않고 벌써 우주 경비선 밖으로 뛰어나갔다. 시리우스가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말하며 자신을 앞세우고 뒤따른다는 것을 스노는 조금도 알지 못했다(아직은 백지 같은 마음 위에서 뛰노는 스노의 행동인 것이다. 미움도 모르고, 못된 계획을 꾸밀 줄 모르고 호기심과 즐거운 것에만 관심 있을 뿐...).
스노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관음사로 달려 내려갔다. 뒤따라서 시리우스가 탐사선을 타고 절 마당에 내려섰다.
“히히힝! 어? 형아하고 백구는 안 보이네?” 
그때 마당에서 약재를 달이던 범진 스님이 조금은 놀라는 표정으로 일어섰다.
“스님 이모, 데네브 누나 아니 은교 누나 병 고쳐 주려고 교수 이모 데려왔어.”
“나무관세음, 범진이라 합니다.”
“나무관세음, 시리우스라고 합니다.” 
범진 스님이 합장하며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자, 엉겁결에 시리우스도 똑같이 따라하며 인사했다.
“은교를 보아 주시게요?”
“네, 제게 기회를 주시면 해 보겠습니다.” 
범진과 시리우스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은교가 요사체 부엌에서 나오고 있었다.
“인사해. 시리우스 의사 선생님이시다.”
“안녕하세요.” 
은교는 아직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에도 익숙하지 못했다. 자신의 이름이 은교라는 것조차 크게 의미를 두거나 인식하려 하지 않았다. 남들이 볼 때 이름이 왜 있어야 하는지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으로 가실까요? 먼 길 오신 것 같은 데 차 한 잔하시며 땀부터 식히시지요.”
“감사합니다.” 
또 합장하며 방으로 안내하는 범진 스님 따라 시리우스는 다시 합장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은교야, 너도 들어오렴.”
“누나, 안녕.”
“안녕.” 
은교는 범진 스님이 부르자, 별표정 없이 스노와 인사를 주고받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무관세음, 나무관세음.” 
마당에 혼자 남은 스노는 뒷다리의 두 발로 섰다. 그리고 앞다리 두 발은 합장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연신 숙여가며 범진 스님을 흉내 내었다.
“이 나라 분은 아니시군요.”
“시리우스라는 별에서 왔습니다.”
“이름이 같은 것을 보니 그 별의 주인이신가 보군요.” 
범진 스님은 시리우스라는 여자를 의심해야 할지 믿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지구에는 해적별에서 들어온 자들도 있습니다.” 
시리우스는 범진의 마음을 읽고 말했다.
“그렇군요.” 
알게 해 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범진 스님은 또 합장을 했다. 시리우스도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
“은교야, 의사 선생님께 찻물을 따러 드리렴.”
“예, 스님.” 
은교가 시리우스에게 찻물을 부을 때, 시리우스는 알파와 감마 에너지를 은교의 긴 머릿결을 통해 스미도록 하였다.
“고마워.” 보면 볼수록 데네브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시리우스는 데네브를 잘 알고 있었다. 기드로온이 자신에게 소개 시켜 주고 함께 자주 놀러왔었기 때문이다(늘 손잡고.).
“법당에 향을 꽂아 줘.” 범진 스님은 일부러 은교에서 무엇이든 힘들지 않은 일을 자꾸 시키려 했다. 기억을 되살리려 애쓰는 것이었다.
“사물 인식은 조금씩 익혀가는 중인데 기억을 되살리는 일은 한참 걸릴 듯하군요.” 은교가 법당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가자, 범진이 현 상태를 말해 주었다.
“방금 전에 기억을 안에서 밖으로 되살리는 치료를 시도했습니다. 밖에서 깨어 주는 일은 은교가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쉽지 않겠군요. 미안합니다.” 시리우스는 은교에게 시도한 것을 말해 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도와주시어 감사합니다. 그런데 은교를 어떻게 아시는지.”
“제가 가르친 학생의 여자친구입니다.”
“혹시, 눈빛보석.”
“예? 기드로온.. 아니, 눈빛보석 맞습니다.” 시리우스는 기드로온이라고 말하다 당황하여 말을 바꾸었다. 이번에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다 또 실수를 저질렀다. 
“저런, 찻물이 엎질러졌군요. 치워 드릴 게요.”
“죄송합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 와중에 범진 스님과 시리우스가 서로 손을 잡았다. 너무나 부드럽고 따스했다. 우주 어느 별에서도 느낄 수 없는 느낌이 범진에게서 전해지는 것을 시리우스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범진은 지금껏 살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촉감을 쓰다듬은 듯한 느낌을 시리우스에게서 받았다. 실크보다 부드럽고 흰 솜보다 뽀송뽀송하면서도 신선한 질감 같은 것이었다. 범진은 삼베 건으로 시리우스 앞을 차분히 정리해 주었다. 그때 시리우스는 시계를 보고 있었다.
“저녁 공양이라도 드시고 가시지요?”
“은교가 기억을 되살리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숙지하고 회복하는 데는 하루면 충분할 것입니다. 연락드릴 일은 스노를 통해 알리겠습니다. 필요하실지 모르겠으나 부르실 일 있으시면 이것을 눌러 주십시오.”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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