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칼럼]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희곡 '문밖에서' 전쟁을 고발하다

민병식

시인이며 극작가인 볼프강 보르헤르트(1921-1947)는 독일 함부르크 태생으로 서점 점원을 하며 연극 수업을 받다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중인 1941년에 징집되어 그해 12월 독소전쟁의 동부전선 칼리닌의 겨울 전투에 참전한다. 복무 중 자해 행위로 투옥, 감옥과 전장을 오가는 생활을 했고 복무 불능 상태가 되어 전역하고 전선극장에 배치될 예정이었으나 괴벨스를 조롱했다는 동료들의 밀고로 전역 하루 전날 미결수로 구금되기도 했다. 1945년에 프랑스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로 이송되던 중 탈주, 함부르크로 돌아가 함부르크 극장 조감독으로 활동하다가 병이 악화되어 쓰러지고 스물여섯 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폐허가 됐다. 국가 시설 대부분이 파괴되고. 희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폐허만 남은 독일 전역에서 라디오 방송극 하나가 독일국민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는데 바로 이 작품이다. 달리 라디오 극으로 송출된 ‘문밖에서’는 독일 전역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문밖에서’를 청취하며 충격과 위로를 받았고. 라디오 방송국에는 보르헤르트의 작품을 응원하며 재방송을 요구하는 청취자들의 편지가 쇄도했고, 보르헤르트는 ‘폐허문학’으로 지칭되는 독일 전후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주인공 '베크만'은 열아홉의 나이에 나치에 징집되어 전선에 투입된 후 부상을 당하고 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아내를 찾아갔으나 아내는 이미 다른 남자와 살고 있었다. 충격으로 엘베강에 투신자살을 하려고 몸을 던지나 실패하고 한 여자를 만나는데 그녀의 만류로 살아남고 그녀와 새 삶을 시작하기로 하는데 몇 달 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실종되었던 그녀의 남편이 목발을 짚고 나타난다. 그녀의 남편은 함께 전선에서 전투를 치렀던 베크만의 부하로 그는 베크만을 원망하고 결국 베크만은 죄의식과 불면에서 벗어나고자 전쟁의 책임을 묻기 위해 옛 상관인 연대장을 찾아간다. 그는 전쟁터에서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으면서 자신의 안위만 추구하던 사람이었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도 편하게 살고 있었고 이에 항의하는 베크만에게 오히려 나약함을 꾸짖으며 독일남자답게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라고 큰소리친다.

 

연대장은 전쟁의 악몽을 익살로 바꾸어 코미디 배우를 해보라고 권유하고 베크만은 이를 받아들여 한 극단에 들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1인극 연기를 하지만 극단 단장은 베크만이 성공할 수 없다며 비웃는다. 이에 또 좌절한 베크만은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가지만, 나치 시절 유대인 학살에 동참했던 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후 조사를 받고 공직에서 쫓겨났고 어머니와 함께 가스를 틀고 동반 자살을 했다.

 

베크만은 비록 연대장의 명령을 받는 부하였지만 자신의 부하에게도 명령을 내리는 상관이었다. 즉, 전쟁의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가해자이며 나치의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협력자였던 것이다. 그 죄책감을 덜고 위로받기 위해 아내, 연대장, 극단, 부모님을 찾아갔지만, 그들의 문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아무도 전쟁이 가져온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고 베크만은 정상적인 삶의 문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내팽개쳐진 채 철저히 배척당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도 모르고 내몰린 베크만을 통해 작품은 전쟁이 낳은 부조리한 세상이, 전쟁이 가져온 비인간화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빼앗고 세상을 황폐화시킴을 고발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고착화되고 있다. 소련 연방 해체 후 (구) 소련 연방이었던 국가들이 나토(NATO)에 편입하면서 러시아는 미국의 커다란 위협을 느끼고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북한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고 미국과 중국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형국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도 중요하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국방력 강화도 중요하다. 전쟁의 피해는 아무런 힘도 없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민병식]

시인,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현)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현)신정문학회 수필 등단 심사위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상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1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2022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이메일 : sunguy2007@hanmail.net

 

작성 2023.03.29 10:53 수정 2023.03.29 11:00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