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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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기준으로 전세가율은 108.8%에 이르렀다.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전국의 모든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면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는 사람이 절반도 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2021년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보증보험 가입 주택 중 발생한 보증사고는 무려 2799건으로 총액이 5790억 원에 이른다. 시장에서는 전세보증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주택이 더 일반적이기에, 전체 피해 규모를 추계하면 조 단위는 가뿐히 넘을 것이다.

세입자의 보증금을 떼먹는 이른바 ‘깡통전세’ 및 ‘전세사기’의 문제는 어느새 일상이 됐다. 특정 사기 사건이라고 축소해 보기에는 전국이 깡통전세로 가득 차 있다고 봐도 무방한 지경이다.

주택 보증금 미반환 사태는 전문가조차 피해를 볼 때가 많다.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 가격 및 전세가율(주택매매가격에 대비한 전셋값의 비율) 폭등에서 비롯됐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때 주택의 정확한 가치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특히 피해가 주로 발생하는 저층 주거지의 다세대 및 다가구주택은 부동산의 ‘개별성’이 심한 곳이다. 건축 연수, 품질, 형태가 천차만별인 저층 주거지 주택의 특성상 옆 건물의 가격은 참고 자료가 되지 못한다. 자신이 고른 전셋집의 가격이 적정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으니,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사, 임대인이 나쁜 마음을 먹고 시세나 등기 등을 조작하면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시장의 불안도 문제이지만, 사태를 지금까지 방치한 정부의 책임도 크다. 전세제도의 핵심은 보증금의 사적 금융화를 통해 주택 소유자의 투자금을 확보하는 데 있다. 세입자의 월세 지출 부담을 줄이면서도 다주택자들은 무이자로 큰돈을 확보할 수 있으니, 시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사금융의 대출금이 안정적일 수 없듯이 유사 사금융인 전세보증금은 필연적으로 위험성이 높다. 하지만 정부는 전세제도의 공급 효과에만 관심을 보이고, ‘보증금의 사금융화’로 인한 세입자의 주거권 위협 문제는 좌시했다. 보증금 보호에 대한 예방은커녕 위험성을 높이는 정책에만 몰두했다. 결국 금리, 물가, 환율 상승 등의 국면으로 전환되며, 깡통전세를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여지없이 놓치고 말았다.

이미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이상, 예방의 단계를 넘어 수습의 차원이 됐다. 지금 당장 세입자들이 평생 모은 보증금 보호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무조건 수습만 하기에는, 공공자금 투여의 적절성 논란이 따라붙는다. 보증보험 제도를 악용해 전세가율을 무분별하게 높여 ‘깡통전세’를 퍼트린 다주택자들과 조직적인 사기를 기획한 투기업자들의 보증금 반환 의무를 공공이 대신하는 현재의 대책이 다소 꺼림직한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해도 완벽할 해결책이 없다면, 발상의 전환으로 돌파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정부가 수습을 넘어 마지막 결과물까지를 책임지는 방안을 시행해보는 것이다. 바로 토지(주택)은행 제도를 통해 사고 발생 주택을 모두 매입하는 방안이다. 현재는 공공기금의 손실에 대한 비판 때문에, 보증금 미반환 사고 이후에는 오로지 자금회수 방안에 몰두한다. 그 결과 보증사고 주택은 곧바로 경매에 넘어가며 문제가 발생한 주택이 다시 민간 시장으로 흘러간다. 비록 부정적인 원인에 의해 정부에 반강제적으로 권한이 넘어온 주택일지라도, 민간에 되돌려줄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제대로 인수하고 관리한다면 거주 중인 세입자의 불안도 줄이고 공공의 영향력도 확보할 수 있다. 투기업자들에게 공공자금이 투여되는 문제를, 적극적인 공공성 확보를 통해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다. 공동지분권자인 정부의 선매수는 현행 민법 체계에서도 가능하기에 제도 개선이 필요하지도 않는다.

기금 사용의 문제는 공공주택을 확보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시장을 교란하고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주택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있다면, 전세제도와 보증보험을 무분별하게 악용하는 사례도 줄어들 것이다. 10년 뒤에는 또 어떤 방식으로 주거권을 위협하는 투기 행위가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지 말고, 이제는 적극적으로 주택시장의 공공성을 확보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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