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식 APEC기후센터 원장

APEC기후센터는 국내 유일의 기후예측 전문기관으로서 관련 핵심기술의 개발과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선도 기술의 확보를 통해 ‘우리나라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겨울(2021년 12월~2022년 2월) 전국 평균 강수량이 13.3㎜로 1973년 관측 이래 가장 적었다. 이는 평년(1991~2020년)의 겨울철 평균 강수량인 89㎜의 14.7%에 불과했다. 2022년에는 남부지방의 가뭄일수가 227일로 50년 내 가장 길었다. 근 1년째 가뭄으로 호남지방의 최대 식수원인 주암호 본댐의 2023년 2월 저수율이 20% 이하로 떨어졌다. APEC기후센터의 ‘동아시아 가뭄 통합정보’에서도 올해 2월 한반도가 속한 동아시아 대부분 지역에서 가뭄의 극심한 정도가 진한 주황색(극단적으로 심함) 혹은 진한 갈색(이례적으로 특히 심함)으로 나타났다.

기상청의 우리나라 109년(1912~2020년) 기후변화 추세분석 결과에 따르면 최근 30년(1991~2020년)의 연평균 기온은 과거 30년(1912~1940년)에 비해 1.6도 올랐다. 특히 봄과 겨울에 기온이 올라가는 경향이 뚜렷했다. 최근 30년은 과거 30년에 비해 연 강수량이 135.4㎜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강수일수는 21.2일 감소했다. 계절별로 10년당 여름철 강수량은 15.5㎜ 증가했지만, 가을과 봄의 강수량은 고작 1~5㎜ 늘었다. 만일 이런 경향이 미래에 지속된다면 한 해 동안 비의 양은 늘지만, 비가 내리는 날은 줄어 폭우와 가뭄이 동시에 올 수 있다. 또한 홍수와 가뭄이 심해져 식량안보에 위기가 닥칠 수 있다.

향후 식량안보 강화 측면에서 극심해질 봄 가뭄에도 농업에 필요한 적정량의 물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신뢰성 있는 장기기후 예측정보의 활용으로 댐·농업용 저수지의 용수량(일정한 용도로 쓰는 물의 양)을 조절해 가뭄·홍수 발생 때에 적정 수량의 확보·운영이 가능하다. 2008년 가을과 2009년 봄 사이 강원도 태백지역의 극심한 가뭄 상황에서 기후예측정보를 활용해 갈수기에 대비해 유량을 충분히 확보했더라면 이 지역에서 50%의 제한 급수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고 다수의 전문가는 말하고 있다.

최근 극심해진 겨울·봄 가뭄으로 한반도에서 산불에 취약한 가물고 건조한 환경이 조성됐다. 산림청의 산불통계 현황에 따르면 최근 10년(2012~2021년) 동안 한 해 평균 481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이 중 3~4월의 봄에 발생한 건수는 291.1건으로 거의 절반에 이르고 있다. 산불 발생의 원인으로 입산자의 실수가 33.6%, 논·밭두렁의 소각이 13.9% 그리고 쓰레기 소각이 13.2%를 차지했다.

산불은 약간의 주의로도 예방이 가능한 재난이다. 기후정보를 활용해 나무와 낙엽의 마른 상태 등이 오랫동안 가물고 건조해짐으로써 산불에 취약해진 지역에 관한 정보가 입산자와 인근 지역사회에 제공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자체·지역사회는 산불 취약지와 산불 취약 정도를 파악하고, 인력·자원을 산불 취약지에 우선 배치·관리해 산불 발생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현재 APEC기후센터는 산불 및 연무로 큰 피해를 보는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섬에 산불·연무 조기경보를 위한 화재 발생 위험도 정보를 매년 제공해 산불 피해 예방을 돕고 있다. 이 지역의 6개월 강우량 예측정보를 이용해 1년 중 강우량이 매우 적은 기간인 8월부터 10월 사이에 산불로 인한 화재 및 연무 발생 가능성에 대한 예측정보를 매년 4월부터 7월 사이에 제공하고 있다. 동남아 지역의 재난·재해 관리자와 정책결정자들이 이 예측정보를 활용하여 화재·연무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산림청과 고려대학교도 우리나라에 적합한 인공지능 기반의 산불발생 진단 모형을 개발해 전국단위의 산불위험지도를 제공하고 있다. 이 산불발생 진단모형은 기후·기상자료에 기반해 넓은 지역에 대해 예측되는 산불발생 위험지도에 현재의 식생 건조상태, 사람의 활동 가능성 등을 분석한 결과를 통합해 산불 발생 위험을 구체적인 장소를 기반으로 정확히 진단해 내는 방식이다. 단기산불예측에는 기상청의 기상예보자료를, 장기산불 예측에는 APEC기후센터의 3개월 장기기후 예측정보를 활용한다.

이처럼 최근 봄 가뭄으로 극심해지고 있는 산불 및 농업용수 부족에 의한 식량안보 위험 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신뢰성 높은 기상·기후정보의 역할이 중요하다. 즉 기상·기후정보의 신뢰성을 높임으로써 산불·식량안보 위기 등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우리 국가와 사회가 가뭄과 같은 이상기후에 의한 피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기상·기후 정보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는 데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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