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하얼빈 소재 중국 침략 일본군 731부대 죄증진열관에 항일투사와 전쟁포로를 생체해부한 해부실이 재현됐다. (출처: 연합뉴스)
중국 하얼빈 소재 중국 침략 일본군 731부대 죄증진열관에 항일투사와 전쟁포로를 생체해부한 해부실이 재현됐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아이와 여성 가릴 것 없이 항일 독립운동가나 전쟁포로 등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극악무도한 생체실험을 자행한 일본군의 지하실험실 흔적이 중국에서 80여년 만에 발견됐다.

1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을 종합하면 2차 세계대전 전범국 일본의 ‘731부대’가 전쟁 당시 반인륜적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고문실 흔적이 78년 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그간 수많은 증인의 증언과 실험 증거 등으로 ‘마루타 실험’이 실존했다고 여겨져 왔지만, 실험실 흔적이 발견된 것은 78년 만에 이번이 처음이다. 여기서 ‘마루타(丸太)’는 껍질을 벗겨 둥글게 다듬거나 크게 자른 형태의 통나무를 의미한다. 일본군은 이 용어를 사람에 빗대 사용했다.

이번에 발견된 시설은 731부대 최대 규모 생체실험실인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하얼빈(哈爾濱)에 주둔했던 731부대는 2차 대전 당시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일본군의 세균전 부대다.

중국 고고학자들과 일본 과학자들로 구성된 조사단은 731부대가 헤이룽장성 안다현 지하 기지에서 생체실험을 수행했다는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지난 2019년 조사에 들어갔다. 시추, 발굴 등 다양한 기법으로 지하고문실의 실체를 확인했고, 그 결과를 중국의 고고학 학술지 ‘북방문물’에 실었다.

이와 관련 헤이룽장 지방문화유적 고고학연구소(Heilongjiang Provincial Institute of Cultural Relics and Archaeology) 소속의 연구원은 “이번 발견은 731부대의 만행이 실체로 드러났다는 점과 생화학전을 방지하기 위한 세계적인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했다고 SCMP가 전했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 1941년 안다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문실은 길이 약 33m, 폭 약 20.6m의 U자형 구조물로 양쪽에 밀실이 하나씩 있고 미로와 같은 복잡한 구조로 돼 있다. 여기에는 실험실과 해부실 등이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동쪽으로는 가로 5m, 세로 3.8m의 밀실, 남동쪽으로는 지름 3m의 원형 밀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설 전체는 철조망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곳에서 일본군은 무고한 민간인을 수류탄, 화학 무기에 노출시키고 원심분리기 안에서 회전시켜 죽이며 마취나 진통제 투여 없이 생체를 해부한 것으로 보인다고 미 라이브사이언스가 보도했다. 심지어 안구가 폭발할 때까지 사람들을 저압실에 감금시킨 정황도 확인된다고 뉴욕포스트가 1일(현지시간) 전했다. 시설 구조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 같은 반인륜적인 범죄는 일본군의 삼엄한 경비와 철저한 통제 속에 저질러진 것으로 조사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731부대가 중국 북동부 헤이룽장성 안다현 지하에 설치한 생체실험실 조감도. (헤이룽장 지방문화유적 고고학연구소)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731부대가 중국 북동부 헤이룽장성 안다현 지하에 설치한 생체실험실 조감도. (헤이룽장 지방문화유적 고고학연구소)

이처럼 일본군 731부대는 지난 1935년부터 항복한 1945년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러시아·미국 등 아이와 여성 가릴 것 없이 인간해부와 냉동실험뿐 아니라 탄저균 등 치명적인 세균을 활용한 생화학 무기 개발 시험을 벌였다. 중국 정부는 이 실험으로 희생된 피해자들이 최소 3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 생체실험 관련자들과 학자들은 731부대가 당시 만주 하얼빈 일대에 주둔하면서 전쟁 포로에게 발진티푸스·콜레라 등을 주입해 세균전 실험을 했다는 증언을 쏟아내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여태껏 이러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생존자 등의 증언에 따르면 731부대는 페스트 벼룩을 연구하기 위해 대량의 쥐를 사육했고, 세균무기의 살상력을 알아보기 위해 마루타로 불린 피해자들에게 세균 폭탄을 투여한 후 반응을 살펴보는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질렀다. 항일 독립운동가와 전쟁포로들은 고스란히 실험대상이 됐다. 당시 731부대로 보내져 생체실험 도구로 이용된 피해자는 신원이 확인된 사람만도 1500명이 넘는다.

실제로 731부대 린커우 지대장으로 근무했던 사카키 하야오는 1956년 선양 특별군사재판소 증언에서 일본이 항복하기 몇 달 전 안다 기지에서 “극도로 잔인한 생체실험을 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나무 기둥에 묶여 탄저균에 노출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도 진술했다.

게다가 도쿄지방법원도 지난 2002년 8월 중국인 피해자 180명이 제기한 소송의 판결문에서 “731부대는 1940~1942년 페스트균을 감염시킨 벼룩을 상공에서 살포하거나 콜레라균을 우물이나 음식물에 넣는 등 방법으로 세균전을 벌여 약 1만명의 사상자가 나왔다”고 적시했다.

중국 하얼빈 소재 '중국 침략 일본군 731부대 죄증진열관'에는 일제가 산 사람을 대상으로 자행한 각종 실험장면을 재현해 놓고 있다. 731부대원들이 피실험 대상자에게 동상실험을 하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중국 하얼빈 소재 '중국 침략 일본군 731부대 죄증진열관'에는 일제가 산 사람을 대상으로 자행한 각종 실험장면을 재현해 놓고 있다. 731부대원들이 피실험 대상자에게 동상실험을 하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이와 관련한 증거는 현재 하얼빈 ‘중국 침략 일본군 731부대 죄증(罪證)진열관’에 전시돼 있다. 부대 내 80여동에 달하는 731부대 실험실 대부분은 패전한 일본군에 의해 폭파됐지만, 당시 본부 건물은 폭파에서 제외돼 중학교 건물로 사용되다가 2001년부터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이 항복하고 나서도 731부대 지도자들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하고 민간인에 대한 끔찍한 실험이 있었던 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기밀 해제로 공개된 보안문서에 따르면 당시 일본군의 생체실험 자료는 전쟁범죄 면책의 대가로 미 당국과 공유됐으며, 포트 디트릭에 있는 미 육군 연구센터로 옮겨져 냉전 기간 생물학 무기 개발에 활용됐다.

과거 1990년대에 미국 당국자들이 잔혹한 생체실험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이 자료를 활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일본과 미국의 책임에 대한 분노와 요구의 목소리가 일기도 했다.

이번에 발견된 지하 시설에 대한 이해는 아직 기초 단계다. 조사단은 현장의 범위를 완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추가 발굴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발굴을 통해 일본군이 자행한 잔인한 생체실험에 대한 더 많은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 지난 2007년 속초시에 문을 연 731부대 마루타 역사관. 기사와 무관. (자료사진, 연합뉴스)
▲ 지난 2007년 속초시에 문을 연 731부대 마루타 역사관. 기사와 무관. (자료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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